[연재소설]인연의끈 6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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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6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09.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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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끈

1부 인연

6

 

그런데1984년 여름, 일이 터졌다.

이 국장과 몇몇이 방배동에서 2차로 술을 마시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된 것이었다. 누구와 같이 술을 마셔 그리되었는지 쉬쉬하는 가운데 나쁜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었다. 옆의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붙으며 주사(酒邪)가 지나쳐서, ‘우리가 누군데 감히라는 둥 허세를 부리며 어깨를 잡고 행패를 부리다가, 급기야 양쪽이 뒤엉키고 판이 커졌다. 고위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될 추태였다.

그러나 이 일은 어떻게 된 건지, 이틀 만에 유야무야 되었다. 돈으로 무마한 건지 힘이 있는 무슨 루트를 동원한 건지 하여튼 어찌어찌해서 빠져나오게 된 것이라는 말이 들렸다. 부적절한 그들의 모습에 기준은 혼란스러웠다. ‘그들의 겉과 속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허지만, 엎친데 덮쳐 이 국장이 당시 모 의원의 지역구에 선심성 예산을 과다하게 퍼줬다 해서 일부 언론이 가십(gossip)을 내고, 불용예산을 제대로 된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지원해 버린 일이 감사원의 감사로 드러나 윗선의 미운 털이 박혀 있던 때라, 승승장구하던 이 국장이 불명예스럽게 본부를 떠나게 되었다. 그가 아침 일찍 명패 하나만 달랑 들고 어깨를 내려뜨리며 쓸쓸히 사라지더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기준은 텅 빈 국장실을 보며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 국장에게 시달려온 지난 3년의 세월, 아침마다 신문 스크랩부터 기안문과 보고서를 쓸 때면 글자 한 자, 쉼표 하나, 숫자 하나하나, 셀 수 없는 지적 질을 해대고 핀잔을 주며 맨 날 꾸중을 해대던, 정말 못된 시어미처럼 굴던 그 이 국장. 그의 손아귀를 마침내 벗어나게 되었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긴 했지만, ‘그래도 뭐 좀 안 되었다.’는 한줄기의 안타까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기준은 다른 국에서 일하고 있던 권남중과 같이 저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권 선배님. 뭐 좀 허전하고 그러네. 이제 이 양반은 어찌 되는 겁니까? 뭐 영영 못 올라오나요? 그러기는 좀 아쉽고.”

나도 뭐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한때 모셨던 분이 그리 되니 뭐 좀 그래요. 잘못했으니 인과응보라 봐야겠지만. 글쎄요. 혹시 아세요? 호사다마였는지 새옹지마가 될지, 관운이라는 게 알 수가 없으니. 흐흐.”

그래도 머, 새옹지마가 되면 좋겠네요. 흐음.”

머 꿀꿀한 얘기는 그만 둡시다. 근데 국장·과장급 인사가 끝나가네요. 이제 사무관 차례인데, 정 계장은 어디 봐 둔데 있소?”

“3년이 다 되어가니 아무래도 순환인사에 포함되겠죠. . 어디로 가지요? 초짜가 뭐, 불러주는데도 없고, 가라는 대로 가야죠. 종이 한 장이면, 허허.”

스스로 개척해야지 원.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뭐 외국유학 가는 거 그런 얘길 하던데, 한 번 생각해 보쇼.”

누가? 유학이라, 좀 땡기네요. 중국어를 전공했는데, 인사계에 좀 알아봐야겠네. 하여튼 권 선배님 감사해요. 고비 때마다 이리 좋은 팁을 주시니.”

총무과에는 총무처의 <4·5급 중앙공무원 국외유학계획>이 와 있었다. 새로이 달라진 것은 영어권 위주가 아니고 독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제2외국어권역에도 파견한다는 것이었다. 기준은 바로 지원신청을 내면서 인사계장에게 좀 덜 바쁜 자리로 돌려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얼마 후 <한국외국어대 어학연수원>에 입학하여 반년동안 중국어연수를 받았다. 당시 공무원 중에 중국어 전공한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일부 대기업 사원들과 같이 연수를 받게 되었다. 수료 후 바로 총무처에서 유학절차를 밟으라는 공문이 떨어졌다.

이듬해 19852월 말, 기준은 모든 절차를 밟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대만(臺灣)으로 떠나게 되었다. 1986년 봄, 권남중과 국제전화를 하던 중, 늘 기준의 일에 간섭을 하는 바람에 늘 마음에 불만이 쌓이고 미워했던 그 신승호가 진급하여 해외근무를 하게 되었고, 정기출이도 ㅇㅇ협력과로 옮겨 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며칠 후 들린 더 놀라운 소식은 이전에 불미스러운 일로 좌천되었던 이 국장이 경복궁 뒤 뭐 거기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겨우 1년 반도 안 되는 시점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음에도순풍에 돛 달듯이 승승장구하는구나.’라며 비아냥거렸지만, 이처럼 관운팔자가 좋은 이 국장을 그 누가 따르겠는가? 어디까지 뻗어 올라갈지 하는 의문과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야말로 그의 새옹지마요 권토중래였다.

 

19882월 중순, 기준은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길에 올랐다. 가끔 병원을 오가는 아버지가 걱정이 된 그는 귀국 예정날짜보다 1주일 먼저 돌아와 고향에 갔다.

나랏돈으로 이리 유학을 마치고 오다니 대견허구나야. 인자는 나라를 위해 보답해야 쓰겄다이. 중국과 빨리 왔다갔다해야 헐튼디.

내 병이야 왜정 때 어린 시절부터 먹는 게 시원찮아서 허약해진데다 또 북해도 탄광에서 그 놈의 탄가루 퍼 마시고 못 먹고 또 다치고 혀서 생긴 병잉게 뭐 치료헌다 해서 바로 나아지겄냐이. 그러고 요샌 병원이 좋아져서 말이여. 옛날과는 다르제. 골골 삼십년이라 하지 않냐? 물론 담배도 좀 줄이긴 해야겄제. 잘 묵고 술 줄이고 뭐 주는 약 잘 먹으면 괜찮아질 거싱게 걱정들 말그라이. 너그덜 허는 일이나 열심히 하고 애들 잘 키우고. 알았지야?”

그래도 자식들이 걱정을 많이 하잖아요. 의사 말 잘 따르시고 약 잘 드시고 하여튼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 , 그리고 방씨 아재 찾는 일 그거,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챙겨 보려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길연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아들 기준의 손을 꼬옥 부여잡았다.

 

일요일 점심 후, 기준이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전화기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

아니? 권 선배님. 제가 여기에 있는 줄 어찌 알고 전화를 다 하신 겁니까?”

내가 누구요? 척하면 삼천리지. 귀국했으면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줘야지 원. 쬐끔 서운 할라 하네. 이번 수요일자로 유통국으로 발령이 났더구만. 나와 같은 과요. 신규 사업인데 전통식품개발사업, 새로 오신 국장님께서 제일 역점을 두고 있는 건데. 정 계장 오기 전까지 내가 잠시 맡고 있는 중이요.”

하여튼, 쉴 틈을 안 주는구먼. 일복 많은 놈 어딜 가나 마찬가지네요. ‘외국 나가 잘 놀다 왔다.’고들 한 마디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죽어라 일해야겠군요. 오늘 올라갑니다. 내일 봅시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내일 전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전통식품개발사업세미나>가 열려. 내가 손 국장님을 모시고 내려간다네. 내일 아홉시 반에 부지사실에서 보자고. 국장님, 과장님을 이리 감동시켜드려야지 않겠어? 그래야 귀하의 앞길이 좀 트이지 흐흐.”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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