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5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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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5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09.06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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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연

5

기준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바빴다. 일상(日常)이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과장이 갓 승진한 정기출을 신 계장 밑으로 보내고 다른 신입을 기준의 밑으로 보내었다. 기준이 걱정스러워하였으나 권이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주었다.

정 계장님. 기출이를 발전시키려면 옮기게 해 줘야 해요. 거기에 놔두느니 여기 주무계로 옮기게 하여 전체를 보는 능력, 그걸 키워나가게 해줘야 해.”

아니, 그게 그 친구 평소 신승호에 대해 감정이 별로 안 좋은데, 하필 거기냐고? 무슨 사달 날까 봐 그러죠.”

제가 누구입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하하.”

근데, 신 계장이 왜 기출이를 굳이 데려가려고 하는 겁니까?”

! 그거요. 잘 모르나 본데, 기출이가 7급 공채로 온 겁니다. 머리도 있고 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부전공으로 영어를 해서인지 영어도 아주 잘해요. 나름 시켜먹기 편해서 데려간 거로 봐야겠죠. 뭐 키워주겠다는 말도 합디다만.”

그러나 정기출이 자리를 옮긴 후 예전과는 달리 늘 정신없이 바쁘고 자주 윗사람들한테 혼이 나고 있었다. 과장한테 자주 혼나고 또 국장실에 불려가 꾸중을 듣고 풀이 죽어 돌아오는 모습도 보였다. 게다가 동갑인 신 계장과도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터라 둘 사이에도 냉기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신승호가 갑갑해 하고 정기출은 볼멘 표정을 짓고, 하여튼 두 사람 얼굴에는 뭔가 불만이 가득한 모습을 보이곤 해 기준이 옆에서 보기에도 조마조마하였다. 다행히 권남중이 어떻게 거중조정을 했는지 어쨌건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대로 무난하게 굴러가고는 있었다.

 

이듬 해 1982년 여름, 주요 중앙부서들이 세종로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사를 하고, 기준은 부모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과천에 18평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세 아이들과 같이 살기에는 좀 작은 아파트였지만 생전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한 것이다.

어느 날, 사무실에 기준과 신승호 그리고 기출이 늦게까지 국회자료를 챙기고 있었다.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던 중에 입씨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하여튼 좀 떠들썩하게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기준은 그들의 대화 중에 순창이라는 단어가 나와 궁금하여 끼어들었다.

뭔데 그리 난리요. 나도 좀 압시다.”

. 잘 되었네요. 순창이 고향이라 했죠. 조선 초기 세조 때 신말주 선생 아시죠?”

아 그분! 계유정난 때 단종폐위가 부당하다며 형 신숙주의 권유를 뿌리치고 벼슬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유명하신 분이죠.”

사실은 내가 고령 신씨 신말주 그분의 방계후손이요. 우리 집안은 어느 대인지 모르지만 영월에 정착이 되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가을이면 묘사 지낸다 해서 가끔 내려가시곤 합니다. 근데 기출이 이 친구 어머니가 순창 설씨라 해서, 얘기를 듣다 보니 이 사람이 뭐 여러 일화를 말하네요.”

, 로맨스나 에피소드? 신말주 그분이 당시 여류 문인이신 순창옥천 설씨와 아름다운 부부의 연을 맺어 순창으로 내려와 살면서 귀래정(歸來亭)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지요. 유명한 실학자 신경준, 그리고 화가 신윤복 그분도 그 후손이죠. 귀래정! 읍내 남산대 옆 언덕배기 산 위에 지어진 것인데 우리 중학교 때 친구 집이 거기라 놀러가곤 했죠. 귀래정은 그분의 호()도 되고 지명도 되는 셈이지.”

이때 기출이 신이 나 말하였다.

신말주 그분과 당시 외동딸이신 설씨 부인 간에 부부의 정이 깊었다는 그런 일화가 많았죠. 우리 어머니가 그 설씨 후손이시거든요. 옛 조상들에 대해 들어보면.”

설씨? 그 시조 설거백은 신라가 생기기 전 박혁거세의 설화에 나오는 6부 촌장 중 한 분이신데, 중간 후손으로 원효대사의 아들로 이두문자를 발전시킨 설총 그분도 계시고. 아하! 지금 기이한 인연이 발생되고 있네. , 두 집안이 수백 년 전에 사돈 간이었다? 그 후손들이 만났으니 이제 해후하여 회포를 풀어야 되는 거 아닌가? 흐음!”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신승호가 자기 책상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근데 기출씨 말이죠. 궁금한 게 있어요. 경주 정씨라 들었는데, 내 친구 정순조의 말에 따르면, 이름 항렬이 영, , 병으로 이어진다던데, 자가 나오나요?”

우리 집안이요?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한테 물어 본 적이 있었죠. 이 양반이 얼버무리면서 이름쟁이가 항렬 따르지 않아도 된다.’라며 기출이라 지어주더래요. 동생들은 병 자 돌림이 맞아요.”

 

그해 늦가을, 기준은 아버지와 당숙들과 함께 순창 선산의 묘사(墓祀)에 참석하였다. 묘사에는 순창지파 18세손인 경혜 할아버지의 아래 후손 중 관내 일가 자손들, 임실, 진안, 담양으로 흩어진 일가들 삼십여 명이 넘게 모였다. 묘사를 마친 후 음복(飮福)을 하는 중에 기준이 임실과 진안에서 온 아재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재.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남원에도 초계정씨들이 산다고 말입니다. 우리 집안은 아니죠?”

아닐 거이다. 있다믄 우리 순창 중시조 이전 윗대에서 갈라져 내려 왔거나, 다른 어디에서 흘러 남원으로 왔든가 했겄지.”

이때 진안에서 온 보연 아재가 중간에 들어와 말을 하였다.

조카 얘기를 듣다 봉게 생각이 하나 나누만. 예전에 우리 마을 유제(이웃)에 이씨가 있었는디 택호가 남원댁이었제. 그 아주머니가 자기 친정이 초계 정씨라 해서 내가 일가라며 함서 좀 친하게 지냈어. 그 집 아들이 성질은 머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디 공부 머리는 괜찮았제.

근디 그 이씨 그 사람이 아버지 때는 괜찮게 살았는디, 좀 헤프고이 야무지질 못 헝게 가난해져 가꼬, 자식들 중학교도 못 보내게 된 거야. 그때 전주에 살던 친정아버지가 그걸 보고는 안씨러웠는지 식구들을 다 올라오게 하여 같이 살았제. 그 애를 전주에서 공부를 하게 해서 서울 그 먼 대학이드라. 하여튼 좋은 대학에 합격헝게 학비와 하숙비를 다 대 줬다등만. 들으니 무신 고시엔가에 붙었다든디. 조카 말대로이 남원에도 다른 뿌리로 해서 내려 온 우리 일가가 있을 수도 있제이.”

 

그런데1984년 여름, 일이 터졌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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