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10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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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10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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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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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기준이 곧장 고향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 드디어 찾았어요. 방씨도 은혜를 주셨다는 그분도 누구인지 다 알게 되었단 말입니다. 이젠 그분을 만날 일만 남았어요!”

그간 아들이 알아낸 자초지종을 들은 길연, 아들의 손을 맞잡고 방씨의 이름이 기환인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을 탄식하고 감격해 하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정 부잣집 정치승, 니 말대로 하면 그 분이 여든도 넘으셨을턴디, 지금도 살아 계신다 이 말이제. 정치승? 치승?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기도 헌디. 가만 있자, 긍께 니 큰아버지를 일본에 데려갔다던 그 김치승 그 분인가비여!”

 

치승 할아버지

이튿날 일요일 아침, 기준이 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남쪽 전주천을 건넜다. 동과 남으로 나가는 큰 삼거리 그 동남쪽 멀리 큰 학교가 보였다. 동사무소 직원이 마침 그 근처 경로당에 갈 일이 있다면서 앞장서서 기준을 안내하였다. 남쪽 순창 방향으로 가는 큰 길을 따라 이백 여 미터 연도에 상가들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비탈길에 2-3층 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경로당 앞에서 그 직원이 손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너른 골목길의 끝자락에 보이는 규모가 제법 큰 한옥 기와집을 가리켰다.

소슬 대문 오른 쪽에 정치승이라 쓰인 문패가 선명히 보였다. 기준이 반가운 마음에 얼른 문 앞의 종을 흔들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다시 종을 흔들고 이어서 문도 두드려 보았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준은 할 수 없이 길 아래쪽으로 내려와 경로당의 문을 열었다. 노인 몇몇이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옆 점빵으로 가 음료수 두 박스를 사왔다.

어르신들, 여쭙겠습니다. 저 위 골목 큰 기와집, 주인을 좀 찾아뵈려는데.”

그중 좀 젊어 보이는 한 노인이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기준을 마주 보았다.

. 나는 여기 총무 김인수여. 뉘신데 이리 귀한 인삼음료수를 다 사오고이, 고맙네이. 근디 그 정 부잣집을 왜 찾으시오이? 이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은디?”

? . 저는 순창 사는 정가입니다. 먼 일가집인데, 고향에 왔다가 올라가는 참에 찾아뵐 일도 있고 해서, 근데 거기에 아무도 안 계시네요.”

이분이 어디 가셨나? 딸네 부부도 어디 갔능가비네. 사위가 몸이 좀 안 좋은디, 또 병원에 갔나?”

어르신, 집안 사정도 잘 아시는 거 보니, 그분과 친하시나 봅니다.“

아 그러엄. 좀 알제. 그렁게해방되고 이삼년 되었나? 이 양반이 자기 성님과 같이 이곳에 나타나셨어. 당시 여기 이장을 하시던 우리 큰 성님헌테 이곳 땅을 사시겠다며 거간을 맡아 달라 하셨단 말이시. 그때는 이곳이 아무짝에도 씰모없는 야산 언덕배기라 갑씨라고 머 헐 것이 없었제. 게다가 육이오 전이었승게 당시 누가 이런 빌 볼일 없이 잡목이나 우거진 이 야산에 욕심을 내었겠어. 하여튼 당시에 시세보다 2할 이짝 저짝을 더 쳐중게 땅 주인들이야 감지덕지했제. 정말이지 그때 그 양반이 사준 것만 해도 감사헐 일이었제.”

그 어르신이 이곳으로 올라오신 게오일륙 그때였죠?”

그려어 맞아. 그때 성님이란 분은 이미 돌아셨다고 허드만. 그 치승 어른이 이 야산 자락에 앞뒤로 큰 기와집 두 채를 짓고 성님네 집안 식솔까지 다 델고 오셨제. 내가 그때 여그 이장을 했제. 하하. 인정이 많으셨당께. 이장 허느라 고생한다며 우리 집에 쌀도 주고 용돈도 찔러 주시곤 했제.”

그때에 학교도 있고 주위에 집들도 좀 있었나 보죠?”

아니여. 초가집 몇 채 뿐이었어. 근디 당시 도()교육청에서 학교를 짓겠다고 여기저기를 물색허고 다니다가 이곳에까장 오게 되얐는디, 그때부터 이 동네가 천지개벽을 하게 된 거제. 그때 치승 어른이 이리 말한 거여.

- 여기 내 땅 3분의 1인 중간 야산지역을 학교부지로 기부 채납하겠소. , 두 가지 조건이 있소. 여기서부터 우리 땅 앞길을 지나며 동쪽 남원과 남쪽 순창으로 가는 신작로를 넓게 만들어 주고 그 주위 지역을 상가와 택지로 용도를 지정해주는 것이오. -

도청과 도교육청 사람덜이 이 어르신의 이런 통 큰 기부에 감사하며 얼릉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큰 절을 올렸제. 바로 땅끈차를 들이대고 토목공사에 들어갔당게. 야산을 좀 깎아내리고는 학교 터를 닦기 시작한 거제. 시내에서 넘어오는 다리를 다시 널게 세우고. 그러다 봉게 이곳에 일자리가 생겨 사람들이 일을 나가 돈도 벌고이 참 좋은 시절이었제. 학교 앞 양쪽으로 나가는 길을 다 넓히고 나중에는 포장까지 해줬당게. 덕분에 동네 구역정리도 되야불고이. 대단한 공사였제 큰 공사!“

그러면 오늘날 이 큰 학교와 번화해진 동네 모습이 그때부터 그리된 거군요.”

그라제. 큰 학생들이 몰려 오니께 뭐 사람들이 복작거리고 상가도 생기고 집도 막 지어대고. 서울로 치면 전주의 강남이 된 거제. 땅값이 다 올라부러 동네 사람들이 다 덕을 봤단 말이시. 다들 감사해 하고 받들어 모셨제. 우리 또래에서 그분을 모르면 간첩이제 간첩. 허허. 이 양반 팔순 때 거판지게 잔치를 벌였어. 동네 사람들을 다 초청하였는디, 시상에봉투를 하나도 안 받는 거야. 지금도 말이여, 이곳에 자주 들러 막걸리 사 마시라고 봉투를 내 놓곤 헌다니께.“

대단하신 분이군요. 이 지역의 전설이시군요. 제가 오늘 만나 뵈려 했는데, 어르신, 수고스럽지만 제 명함을 그분께 좀 드려 주세요. 순창군 적성에 살던 일가의 자손이라며 꼭 전화를 주셨으면 하더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요.”

기준이가 아버지 길연에게 그분 동네를 찾았으나 만나지는 못했다.’고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낙담하면서도 전화가 올 거 아니겠냐며 느긋하였다.

그날 귀경 후, 그러나,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 답답한 마음에 기준이 그 동사무소를 통해 경로당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넣었다. 세 번 만에야 겨우 김인수 총무와 연결이 되었다.

긍게, 전화 안 왔다 이 말이제. 그럴 리가 없는디이, 누구 만나는 것을 꺼리실 분이 아니신디, 왜 그랬을까이?”

수고스럽지만, 한 번 더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요.”

얼마 후 김 총무의 전화가 왔다.

그게 말이요. 전화 안하실 것 같여. 뭐 순창이랑뭐 일이 있었나? 좀 떨떠름한 표정을 짓긴 하등마는. 잘 모르는 일가라며 고개를 돌리고이, 전화번호도 말하지 말라고 허든디. 나가 보기엔 아무래도 다시 와 보는기 나슬 거 같구마이.”

? 그분이 왜 그럴까?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순항하던 배, 그 앞에 생각지도 못한 암초가 나타난 격이었다. 무슨 암초인지도 모른 채, 기준은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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