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23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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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23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4.01.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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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끈 23

 

아니 이럴 수가, 아무리 그려도 그런 집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여! 얘야. 내 더 좋은 놈 골라 오마. 기다려. ?”

아부지. 지송혀라우. 지는 인득이가 좋아요. 예전 왈패 놈들 몰아내 것 보셨잖아요. 장부도 잘 본다면서요. 쇠때(열쇠)도 다 맽기시고요. 사실, 아버지도 원래 양반 자손은 아니었잖아요.”

뭐시 어째에? 감히.”

아부님, 저 시상에 간 지 남편도 이 일을 갖고 고민 많이 했드랬어요. 아가씨도 억울허지만 소박을 맞은 거로 소문이 나 부렀으니 피장파장이고, 인득이 그 사람을 면천시키면 될 거 아니냐 했지라우. 중매 할멈도 안 오잖아요. 에진간허면 받아들이시라우. 그리고요. 둘 사이는 이미.”

? 벌써?”

상길 부부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숙영이 더 놀라 억울한 표정을 짓고 올케를 쳐다보았다. 최씨가 고개를 돌려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었다.

 

며느리를 보내고 난 후, 김상길 내외는 고민에 빠졌다. 죽은 형만의 말마따나 피장파장이 맞았다. 둘 사이가 선을 넘어선 것 같다.’는 며느리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게다가 2년 전부터 김상길은 지병이 도져 객주의 일은 아들이 챙겨왔는데, 아들이 죽은 뒤로 몸이 더 나빠져 이젠 정상진 부자에게 맡겨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앞으로 삼년 아니 길게 잡아봐야 오년? 더 이상 살 것 같지가 않았다. 상길은 인득을 사위로 삼으면 어떤 점이 좋은가.’를 냉정히 내다보았다. 집안이 좋고 나쁨을 떠나 자기가 죽은 후 아내와 딸의 장래를 생각해보니, ()보다 득()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려어, 종 출신이긴 해도 똑똑한 놈인 건 맞아.’

아내 윤씨의 손을 꼬옥 잡으니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 김상길이 마침내 정상진 부자를 불렀다. 방안에는 아내 윤씨와 딸 숙영도 같이 있었다. 마루 앞에 다소곳이 서있는 상진 부자를 방으로 들어오라 하였으나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고 들어가지 않았다.

자네 부자를 부른 것은두 가지 부탁이 있어서네.”

? 저그덜헌티 무슨 부탁까지, 당치 않게 그런 말씸을 다 하십니까요?”

아닐세. 자네들도 알다시피 아들이 저 시상으로 간 뒤 내 가슴 병이 도졌네. 백약이 무효이니 의원 말대로 오래 살아 봤자 몇 년일 것이네. 인자부터 자네 부자가 객주 일을 다 챙겨 주어야 허겄네. 농사일은 따로 머슴을 두어 맽기세.”

예에? 아니 됩니다요. 지들 능력이 안직은 미천헌디 어찌. 아무래도 다른 적임자를 찾아보시는 게 옳을 것입니다요.”

아닐세. 자네들이 십여 년 전 이곳에 올 때 이미 자네 주인의 추천을 받았기 땜에 자네들을 믿었고, 또 오랜 기간 성실하게 일하여 온 걸 내 지켜 봐 왔는디 무신 걱정이 되겠는가? 특히나 인득이가 영특하고 꼼꼼하여 이제는 일을 맡길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 이리 결정한 것이네. 그리 알고 따라 주게. .“

, . 그리 말씀하시니 감지덕지할 뿐입니다요. 열심히 배우며 성심껏 따르겠습니다요. 잘 가르쳐 주시라우.”

그리고, 상진이 자네에게 둘째 아들이 있다고 들었소만?”

그렇습니다요. 어찌 그걸 물으십니껴?”

하나뿐인 손자도 죽고, 며느리도 친정으로 보내버리고 이제 살붙이라고는 혼자가 된 딸년 숙영이 뿐이지 않은가. 걱정이 태산 같다오. 그간 요조숙녀로만 키워온 디다가 성격도 온순하여 내 가업을 물려받기는 어려울 것이여. 이 객주를 맡을 사윗감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지만, 맡을만한 적임자를 아직 찾지 못했어. 내 병이 언제쯤 좋아질지 자신도 없고 또 언제 죽을지도 알 수 없으니, 근심만 늘어나고 있단 말이오.”

한숨을 쉬던 그가 문 밖으로 나와 정상진 부자를 두 손으로 붙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간에 보였던 주종간의 모습을 다 버리고 마주 앉은 것이었다. 그가 결연하고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정상진 씨, 정식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 집안과 사돈을 맺읍시다. 아들이 둘이시니 인득이를 내 데릴사위로 줘도 되지 않겠소이까? 우리 숙영이가, 인득이 아니면 절대로 시집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내 안 사람도 그리 생각헌다 합니다.”

아이고! 주인어른, 저희 같은 종놈 집안과 사돈을 맺다니요? 이 무슨 가당치 않은 말씸을 하십니까요? 그만 거두어 주셔라우.”

무신 말을 그리 하오. 신분을 따지자면 우리도 삼십 오년 전에는 종이었단 말이오. 정상진 씨 집과 다를 게 뭐 있소이까? 인득아. 니 생각은 어떠하냐? 일방적으로 우리의 말만 해서 좀 그렇구나야.”

? . 저기요. 아 예 예.”

인득이 얼굴이 그만 벌게지고 더듬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기쁨이 넘쳐나 덩실덩실 춤을 주고 싶었다. 그저 망연히 숙영을 바라보기만 할 뿐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인득아. 그간 니가 장부를 쓰고 관리하는 일을 인자는 책임을 지고 각단지게 챙겨 나가도록 해라. 우선 급한 게 면천이외다. 내가 면천 비용을 다 준비해 놓았으니, 내일이라도 당장 순창으로 올라가시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틀 후 상진 부자는 주인 김상길의 편지와 면천비용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주인이 내준 두 필의 말을 타고 고향 길에 올랐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담양을 거쳐 순창읍내를 지나 개고개를 넘어서니 멀리 채계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상진이 갑자기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떨군 채 흑흑거리기 시작했다.

아부지. 왜 왜 그러세요?”

그게불쌍헌 누이가 갑자기기 생각이 나서. 종년이라고 무시를 받고 억울한 꼴을 당해 물에 빠져 죽을라고 했던 그 동상의 일이.”

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또 훌쩍거리다가 궁금해 하는 아들 인득의 손을 잡고 입을 열어 옛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들쑥이 스무 살이 될 무렵 여동생 사월이도 열여섯이 넘은 처녀가 되었다. 남다르게 예쁜 누이는 소리에도 재주가 넘쳐 여기저기 사내들이 욕심을 내어 집적대기 시작했다. 특히나 양반이라는 자들이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 첩으로 데려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어떤 소리꾼이 데려가 가르치겠다는 말도 하였지만 사월이의 부모는 어떡하든 종의 집안만 아니면 좋을 것 같다며 배필감을 찾고 있었다.

오빠 들쑥은 사월이가 옆 동네 사는 양인(良人)으로 좀 잘 생긴 두만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이 보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종의 신분이 양인 배우자를 고르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두만 그 자도 예쁜 사월이를 좋아하였다. 하지만 평소에 자기 아버지로부터 양인이나 양반집 규수와 혼인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어온 터라 어떻게든 그저 하룻밤 데리고 놀아 볼 궁리를 하며 사월이의 주위를 얼쩡거리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또 다른 남자, 동네 양반집의 둘째인 난봉꾼 완보도 사월이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 딸이 둘이나 딸린 자이었지만 사월이가 자주 가는 곳을 맴돌며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1981년 중앙부처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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