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24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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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24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4.01.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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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끈 제24

 

음력 삼월 삼짇날 온 동네 사람들이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동네의 평안과 복을 비는 제()를 올리던 그때, 두만이 정명진의 집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행랑채의 툇마루에서 혼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사월이를 보았다. 온 집안이 조용한 것을 본 두만은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하며 살금살금 다가가 그녀의 옆에서 허리를 껴안았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평소에 마음을 좀 두고 있었던 두만인지라 완강히 뿌리치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급기야 아래 샅이 부풀어 오른 두만이 그녀의 가슴을 더듬으며 방으로 밀고 들어가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 이튿날 저녁 무렵, 완보가 갑자기 사월에게 다가 왔다. 평소 엉큼스럽게 쳐다보던 그 자가 싫어 눈을 피하고 있는데, ‘어제 낮에 두만이 그놈이랑 같이 있었제? 내 입을 막으려면 자정이 되기 전에 다리 밑으로 와라.’라고 얄궂은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날 밤, 사월이는 결국 완보의 욕정을 채워주는 노리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두만이는 디딜방앗간으로 사월이를 여러 차례 불러내어 지 욕심만 채우고 일어났다. 완보한테 코가 꿰인 사월이가 속절없이 끌려 다니고 있었다. 사월이는 두 놈들의 농락으로 처녀로서 가져야 할 모습을 잃은 채 진퇴양난의 꼴이 되고 말았다. 사월이는 종년이라서 이리 억울하게 당한 자신의 운명에 분한 마음과 서러움에 복받쳐 그냥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결국사월에게 사달이 생기고 말았다. 달거리가 없어진 것이다. 고민 고민하던 사월이가 동네 뒤 저수지로 가 빠져 죽으려는데 한 과객이 잡아끌어 내었다. 이 일로 사월이가 두 놈에게 몸이 더럽혀진 것을 알게 된 오빠 들쑥이 분노로 치를 떨며 되뇌었다. ‘이놈들이 갖고 놀기만 해? 종으로 태어난 우리가 잘못인 거야? 두고 봐! 절대로내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들쑥은 며칠 동안 아내와 어찌 해야 할지를 놓고 여러 얘기를 나눴다.

들쑥이 아내에게 자기의 계획을 귓속말하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들쑥은 두만과 완보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들쑥과 처남은 밤중에 방앗간에서 두만을 기다렸다. 사흘 째 밤, 다른 계집아이를 데리고 놀다 돌아가는 두만을 도랑으로 밀쳐 넘어뜨려 두 팔을 뒤로 묶고 재갈을 물리면서 바로 보자기를 씌웠다. 처남에게 도랑 앞쪽으로 나가 망을 보게 하고 들쑥은 몸부림치는 두만의 배에 올라타 사타구니를 벌렸다. 그 작은 주머니를 잡아내어 단도로 한 치 정도를 가르고 눌러 짜 내버렸다.

그 이튿날 초저녁부터 들쑥과 처남은 또 독집 주막을 들락거리는 완보를 채계산 기슭 숲속에서 기다렸다. 사흘 때 밤, 혼자 흥얼대며 나오는 완보를 인적이 없는 골짜기로 끌고 갔다.

하눌님, 지가요 감히 천벌을 주었습니다요. 그려도 되지라우. 사월아 사월아. 이젠 그만 울어라.’

 

이튿날부터 들쑥의 아내가 몰래 둘의 동태를 살폈다. 두 놈은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두만의 아비가 읍내에 갔다가 약봉지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지만 의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완보의 아내가 수심에 찬 모습으로 문밖으로 들락날락만 할 뿐 더 다른 동정이 없었다.

며칠 후 들쑥이가 아버지와 독대하였다. 주인(정명진의 아버지)도 두 놈의 행태를 듣고 분노하였지만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상책이라 여겨 들쑥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저녁 들쑥이가 누이동생을 저수지에서 꺼내어 살려준 은인 그 소리꾼 주씨를 찾아갔다.

죽일 놈들 같으니라고! 누이한테 그런 억울한 일이, 지가 데려가겠소이다. 내 여동생으로 삼아 잘 가르쳐 큰 소리꾼으로 키울 것이오. 걱정 마시오.”

새벽 첫닭이 울 무렵, 들쑥 가족이 사월이와 주씨의 하직인사를 받았다.

 

아부지. 그 후로 그 고모님은 어찌 되셨나요?”

그 후로하아. 둘이 종적을 감춰 불고, 한참 나중에 주씨의 제자라는 사람이 와 남원 광한루 앞 진내공의 집에 은로라는 이름으로 바꿔 살고 있다.’라는 말만 해주고 가버리더구나. 종 집안 자식이라고 알려질까 봐 내 얼씬도 않고 있었제. 세월이 많이 지나씅게 한 번 찾아 봐야 허는디. 그리고 두 놈 다 대가 끊어지고, 나중에 완보 그 놈의 여편네가 바람이 나 도망가 불고.”

아버지, 지가요 나중에 한번 남원에 가볼게요. 어찌 사시는지, 지도 궁금허네요.”

 

상길의 편지를 읽은 명진이 감격하였다.

자네들이 이리 일을 잘하여 내 체면을 세워주고이, 주인 그 냥반이 면천비용을 이리 많이 대며 또 억새(인득)를 데릴사위로까지 샘는다 하니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 있는가? 차암 대견한 일이로구나! 면천비용이라, 그거야 내 형편이 안 좋아 많을수록 좋겠지만, 받아 온 것 중 자네 자식 3남매의 것은 내 받지 않겠네.”

? 그게 무신 말씀이신지? 그래도 되겠능교?”

나라 법이나 사례가 그런다 해도 난 말이여 자네 자식들까지 종으로 여겨 본 일이 없었어. 그걸로 농사지을 땅이나 더 사 놓든가 허게.”

? 이리 줄여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씸을 올려야 헐지, 아들 놈 혼인 때는 꼭 오셔야 합지요.”

 

이튿날 아침, 인득은 오랜만에 어릴 적에 물놀이를 했던 적성강변(섬진강 상류)을 걷다가 잡초와 갈대가 우거진 습지의 철새를 보며 한동안 옛 생각에 젖었다. 이어서 예전에 사랭이 마을 앞 강변을 돌아보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점심 후, 우선 아버지 상진에게 자기의 생각을 설명한 후 저녁에 명진을 만났다.

지가요, 보부상을 하면서 여러 곳을 다니며 왼갖 일을 다 겪었는디요. 장사라는 거이 돈을 좀 더 벌긴 허지만요 사람대접을 받고 살기는 어려운 것이드만요. 이번에 지가 어쩌다가 부잣집 데릴사위로 가게 되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객주를 정리하여 다른 일을 할까 생각중이여라우.”

인득이 사랭이에 정착하고 강변습지를 개간하여 논을 만들어 보겠다는 자기의 생각을 조단조단 설명하였다. 명진이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랭이 거기 괜찮은 동네야. 배산임수라 살만하고 들이 넓어. 강을 사이에 두어 여그하고는 왕래가 적제. 개간이라? 나라 땅이라 헐값에 살 수는 있겄지만 둑을 쌓을라면 돈이 많이 들 것인디.”

맞습니다요. 지가 보니 여그도 사랭이와 마찬가지로 강변 습지를 개간 할 수 있을 것 같드만요. 우선 여그부터 시작해보면 어짤까요? 우선 땅을 사놓고 봐야지요. 저희가 드린 면천비용으로 마을 앞 강변 습지 황무지를 사 놓으셨으면 합니다요. 어떻것습니까? 소문이 나지 않도록 하시고요. 글고 여기 저희들이 모은 돈과 우리 삼남매의 면천비를 합쳐 가져 왔으니께 땅을 더 사 놓으시라우. 낭중에 또 지가 돈이 되는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요. 그때마당 땅을 사두시면 좋겠는디요.”

 

야아! 우리 억새 아니 인득이 이제 보니 옛적 종의 자식 억새가 아닐세 그려. 괄목상대(刮目相對). 생각도 깊어지고 조리가 섰어, 장가도 가니 인자부터는 자네라고 부르겠네. 자네 말대로 그 황무지를 사 둬보는 게 좋을 듯싶으이. 내 그리 함세.

! , 한 가지 인득이 자네가 알고 지내야 헐 게 있어.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1981년 중앙부처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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