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26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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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26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4.02.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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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김상길의 장례를 치른 이듬해 봄 어느 날, 인득은 이어서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이주계획에 나섰다. 인득은 사전에 아내 숙영에게 자기의 계획을 말해 설득한 후 장모 윤씨와 마주 앉았다.

어머님. 돌아가신 아버님(김상길)이 큰 노력을 하시어 재산을 많이 모으신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라우. 그런디 큰 부자가 되긴 했지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늘 장사꾼이고 그래서 평생 이리 살면 우리 자식들도 장사를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요. 옛날과 달리 지금은 이앙법(모내기)이 대세입디다. 나락도 많이 나고 보리도 심을 수 있게 되니 배로 수확이 늘어 논농사 이문이 지일 큽니다요. 만약 우리가 지금 다른 곳에 땅을 사거나 개간을 하여 소작을 주게 되면, 양반은 아니지만 지주로서 양반 못지않게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요. 또 자석들에게 글이라도 좀 가르쳐야 세상에 낯을 내놓고 행세하며 지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요? 어머님 생각은, 어짜신지요?”

정 서방. 거 참 좋은 생각이구마이. 나도 우리 손자들이 좀 더 다른 대접을 받고 사는 그런 시상에서 살게 하고 싶었다네. 자네도 그리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구마이. 근디, 어디 좋은 땅이라도 봐 놓은 곳이 있는겨?”

어머님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요. 춘향골 아시죠? 제가 예전에 대구 합천을 오가며 남원 사랭이 마을을 눈여겨 봤지라우. 지 생각을 들어보시고 어머님이 의견을 주시면 거그에 따를 거구만요.”

인득이 객줏집을 정리하여 강변 늪지를 사 개간한다는 계획과 이주계획을 그림을 그려가며 좀 세세히 설명하자 윤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딸 숙영을 바라보았다. 숙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암, 거 참 좋은 생각이네 그려어. 자네가 이리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대견허네 대견혀. 그런디 이 객주는 누구한테 넘길 데가 있는겨?“

그게 제일 큰 일이제라우. 지가 좀 알아 봉게 송가네와 홍가네가 관심이 많다 합니다. 얘기를 하면 바로 달려 올 것입니다요. 우리 객주가 목포바닥에서는 제일 탄탄해유. 거간을 넣어 흥정을 붙이면 지법 괜찮은 값을 받고 넘길 수 있을 겁니다요. 염려 놓으셔도 될 것입니다요. 만약 돈이 부족하면 마포 집도 정리해야지요.”

장모가 흔쾌히 승낙을 하고, 인득이 바로 더 많은 돈을 내 놓고 수하들도 다 데려가겠다.’는 송가네에게 객주를 넘겼다. 윤씨는 객줏집 앞에 있던 스무 마지기 논을 친정 오라비에게 넘겨주면서 남원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식구들을 해남의 친정집에 보내 지내기로 하였다.

 

인득은 곧바로 순창으로 가 주인 명진을 만나 객주를 팔아 거금이 마련된 사실을 말하면서 자기의 계획을 소상히 말하였다.

주인어른. 이번에는 강변 위쪽 땅을 다 사 놓으셔요. 나라에서도 개간을 장려하고 있으니께 산다고 하면 다 내놓을 거 아니거습니까요? 거간비를 더 내고 값을 좀 더 쳐주더라도 바로 사 놓으셔요. 그리 되면 대충 백여 마지기가 되지라우.”

그려어. 그동안 자네 생각에 일리가 있어 그리 해 왔네만, 자네 돈인데 내 이름으로 땅을 사고 그러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아닙니다요. 지 이름으로 사면 사람덜이 머시라고 말허것습니까요? 종놈 출신이 어디서 돈이 나 땅을 사게 되었느냐고 쑥덕댈튼디, 그러다가 땅을 못살 수도 있단 말입니다요.”

바로 개간허가를 받아 놓아야겠군. 올 가실부터라도 공사를 시작허세나.”

 

인득이 순창의 일을 마친 후 박씨를 찾아가 그 집에서 저녁 술자리를 가졌다. 그간 박씨를 친동생처럼 대해 온 터라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면서 명진에게 들은 초계 정씨 집안내력과 중시조 충청관찰사, 그리고 한양 북쪽 고양에 있는 조상의 묘에 대하여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다.

이어서 강변 쪽 황무지 개간계획을 대충 설명하면서 관아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찾게 하였다. 박씨가 관아와 손이 잘 닿는다는 읍내 유지 향반 손진관을 소개하였다. 인득이 예를 갖추어 찾아가 여러 얘기를 나눠보니 사또와 먼 인척간이지만 평소 각별하게 지내고 있는데다가, 말하는 품새가 조리 있고 강단이 있었다. 특히 소문을 들으니 사람을 잘 부릴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며칠 후 인득이 다시 손진관과 박씨를 같이 만나 자기의 계획을 소상히 설명하였다. 땅을 사고 개간을 맡아 주면 개간면적의 십 분의 1을 손씨에게 넘겨주기로 하고 박씨에게는 마름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 저녁, 손씨가 사또를 만났다. 조정이 개간을 장려하는 중에 있었으므로 사또는 인득의 제안을 반겨하면서도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지었다. 손씨가 눈치를 채고 인득이 건네 준 거간비를 몽땅 다 넘겨주었다. 손씨는 확실히 능력이 있었다. 인득이 생각했던 것보다 손이 빨랐다. 전광석화처럼 재빠르게 일을 처리하여 습지 황무지를 다 사고, 물길이 닿을 수 있는 강변 땅도 예상보다 싼 값으로 샀다. 이어 개간허가까지 받아왔다. 인득은 땅 값을 다 치룬 후 손씨에게 별도로 거간비를 듬뿍 쥐어 주었다. 이어서 박씨를 통해 집터로 쓰기 위해 마을 뒤편에 집터를 사서 둘레에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감나무를 심게 하였다.

 

해동이 되는 춘삼월, 인득이 나주의 그 기술자들을 데려와 주인 명진에게 붙여주었다. 공사비를 받은 명진이 그들을 행랑채에 기거시키고 노비 넷을 붙여주었다. 기술자들이 강변에 열자 정도의 폭으로 대여섯 자 높이로 석축을 쌓기 시작했다. 동네 민인들에게 노임을 줘 강가의 바윗돌을 옮겨오고 자갈을 퍼 올리니 제법 튼튼한 제방이 만들어졌다. 명진은 또 주변 소작농들을 끌어 모아 논바닥 평탄작업을 하게 하였다. 그들에게 논으로 잘 만들어 농사를 짓게 해주면 소작료를 면제하거나 적게 받고, 또 사겠다는 사람에게는 싸게 팔겠다.’고 공언하였다. 동시에 인근 논 소유자들을 만나 강 위쪽 멀리에서부터 물길을 만들어 내려오는 계획을 말하니 물길을 받게 될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같이 일했다.

거의 2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둑을 쌓고 나니 아흔 닷 마지기의 논이 만들어졌고 물길 작업도 순탄하게 이뤄졌다. 명진은 둑을 쌓고 평탄 작업을 한 동네 소작농들에게 약속한대로 ‘3년 소작료 면제, 이후 5년 소작료 2할 조건으로 소작을 주었다. 대체로 수확량의 4할 내외를 소작료로 받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낮은 소작료에 소작농민들이 감사해하며 논을 자기 것처럼 가꾸었다. 모든 일을 명진이 직접 나서서 처리하였으므로 인득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처럼 관평의 축방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득은 손진관을 수시로 공사 현장에 와 명진을 만나 공사현장을 관찰하게 하고 명진이 쓴 공사일지를 열람시키며 경험을 공유하게 하였다. 관아에서 바위 돌과 자갈이 많은 강변 황무지 5정보를 헐값에 내놓았다.’는 소식을 가져온 손씨에게 거간비를 쥐어 주고 그 땅도 사들였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1981년 중앙부처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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