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32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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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32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4.04.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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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이 나고 을사조약(1905)이 있던 해에 정인권이 병이 들어 아쉽게도 좀 일찍 세상을 떴고 몇 년 후 도현이 치선 아래로 아들 셋을 더 두었다. 인득의 아들 부현도 치준과 치승을 낳았다. 1910<한일합방>의 국치(國恥)가 있었다. 1912, 인득은 면장으로부터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령을 발표하였다는 말을 듣고, 또 인권의 아들 도현이 소작료를 보내 온 것을 보고, 이전에 땅을 나눴던 일이 떠올라 동짓달 하순 순창에 가 도현을 찾았다.

도현이, 이 땅 문서와 지적도를 좀 보게.”

아니? 이것이 뭡니까? 강변 저희 땅 말고 이 스무 마지기는 매년 소작료 절반을 보내 드려 왔는디? 이게 근디 왜 지 아버님 명의로 되어 있는 것입니까요?”

인득이 결국 과거 두 집안 사이에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때 내가 명진 대부님의 명을 거역하고 이 땅을 그분 몰래 자네 아버지(인권)의 명의로 돌려놓고는 매년 소작료 절반을 받아 왔네. 인자는 이 땅문서를 자네 이름으로 이전할 때가 된 것이여.”

아아! 처음 듣는 얘기구만요. 지금 대대로 물려받은 논은 자경하고 강변 논은 소작을 주어 저희가 먹고 살아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요. 이번에 차라리 어르신께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하지요.”

자네도 참, 대부님 체면도 세워드리고 나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그리한 것인데 지금도 여기 관평 땅을 다 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네. 자네 할아버지(정명진)가 말씀 허신대로 동네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펴 인심을 얻고 살려면 이 정도 재산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여튼 관()에서 토지조사가 나오면 반드시 이 문서로 응하여 신고허게. 시기를 놓치면 뺏길 수도 있으니께.”

아이 참. 그러나, 갑자기 그런 이유로 논을 받게 되는 게 참, 그리 말씀허시니 염치없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요.”

받아주니 고맙네그려. 인자는 소작료도 보내지 말게. 인자 관평 이 논들을 내 쪽과는 완전히 관계가 없게 되고, 우리 자석들도 모르게 되었네 그려. 무거운 짐을 하나 벗은 듯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구마 이. 다만, 노비 얘기는 비밀로 해주게.”

당연하죠. 이 큰 일을 누구에게 말하겠습니까요? 허지만 지 장남 치선은 알고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요. 이처럼 감사헌 일을 그대로 감추기에는, 지로서는 너무 벅차고 또 감당하기기 힘듭니다요.”

이렇게 도현은 뜻하지 않게 논이 더 생겨 거의 아흔 마지기가 넘는 논을 가진 부자가 되었다. 도현은 장남 치선이 스무 살이 되자 서둘러 중매쟁이를 내세워 인근 유등면 윤씨 집안의 처자를 며느리로 정하였다.

 

인득이 사량마을에 정착한 초기에 집안 대소사 일을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였다. 평소 심성이 좋고 충직한 마름 방가를 눈여겨보던 중 둘째 아들 기환이 천성이 부지런하고 착해 보여 몇 번 잔심부름을 시켜가며 시험을 해 보았다. 일을 하는 게 야물고, 말수도 적고 신중한 것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고, 더욱이 언문도 다 읽고 쓸 줄도 아는 것이었다. 가난하여 장가를 갈 형편이 못되는 기환을 이웃 동네 소작농의 둘째 여식과 맺어주고 행랑채에 신혼살림을 차리게 하여 집안일을 맡겼다. 방기환은 이런 주인 인득의 배려에 감복하여 충직하게 일하였다.

 

인득이 방기환을 순창 관평에 보내 도현의 가족이 어찌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하였다. 기환이 하루 만에 순창에서 돌아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였다.

도현 그분이 장남 치선을 혼인시킨 후 얼마 안 있어 갑자기 병이 들어 돌아가셨드만요.”

인득이 처음엔 망연자실하였지만, 치선이가 두 동생을 장가보내고, 막내인 치만을 담양의 한 서원에서 유학을 공부하게 하며, 종답과 여동생 몫을 제외한 재산을 4분하여 동생들을 분가시키고, 종답과 선산은 산지기를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는 얘기를 듣고, 치선이가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한 것에 안도의 숨을 쉬며 흐뭇한 기분을 가졌다.

 

그러던 몇 년 후 어느 날, 기환이가 좋지 않은 소식을 가져 왔다. 치선이가 땅을 팔기 시작했는데, 매년 그렇게 해와 이제는 논도 두어 마지기도 안 남은 가난뱅이가 된데다 두 동생이 형님이 선산도 팔아먹었다.’며 다투고 의절까지 했고, 막내도 중도에 공부를 그만 두고 담양에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 이년 후 들려온 더 나쁜 소식은 치선이 병들어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해질 무렵, 인득이 방기환을 데리고 가 주막집에 놔두고 단신으로 치선의 집을 찾았다. 치선이 몸져누워 있고, 옆에 치선의 아내 윤씨가 낙담한 모습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두 어린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원 사랭이에 사는 정인득이네. 혹시 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가?”

? ! 압죠. 아버지한테 어르신 얘기를 들은 바가 있지라우. 오늘 처음 뵈온디, 어찌 이리 찾아 오셨습니까요? 이리 몸이 안 좋아 예를 갖추지 못하니 이거 도리가 아닙니다요. 정말 지송허구만요.”

아닐세. 그냥 누워 있게. 몇 년 전 난 자네 부친이 지 세상으로 간 후 자네가 동생들을 잘 챙겨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는데,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땅을 팔아 가난해지고 또 병까지 들었다는 불행한 소문이 들려내 마음이 답답해 이리 달려 왔다네. 이게 어짠 영문인지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치선이 윤씨에게 고개 짓을 하자 그녀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다시 들어왔다.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는 일이라서. 그게, 말하자면 사연이 깁니다요. 잘못 까닥하면 집안 다 망가징게요. 혼자만 알고 기셔야 혀요. 간단히 말씸 드릴게요. 그러니까 저와 여러 친구들이 십여 년 전 3.1만세 때 읍내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순사한테 잡혀 가 두들겨 맞았는디, 그 중 친구 세 명이 한밤중에 지서주임을 처단하고 만주로 도피하여 독립군이 되었어라우. 그중 높이 된 친구 최가가 매년 겨울에 저를 찾아와서 군자금을 받아갔지라우. 근디 일본 앞잡이 놈이 눈치를 채어, 어떡헙니까? 결국 그놈에게 선산을 뺏기고 일본 순사놈이 담양 땅을 채가고, 그러다 봉께 지 재산이 해마다 줄었어라우. 동상들헌테 의절 당하고 이 인자는 빈털터리가 되어부러 약도 지대로 못 쓸 지경이 된 거시지라우. 누구헌티도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요. 흐흑.”

인득이 듣고 분기탱천하며 안타까워하였다.

아이고. 세상에 그런 어려운 일이 있었구마 이. 거 참. 독립군 군자금을 아니 줄 수도 없고, 억울하게 또 왜놈들헌티까지, 참으로 마음고생이 심했겄네그려. 지금은 일본 놈들 시상인데 어쩌거써? 입 닫고 있어야 집안도 온전할 거신게. 어짜튼 조심허게나.”

인득이 얼마간의 약값을 두고 방기환과 같이 마을을 떠났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1981년 중앙부처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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